‘엄마’는 아이가 처음 접하는 단어이며, 처음 접하는 세상이다. 아이가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려면 삼천 번을 들어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뱃속에서부터 탯줄로 연결되어있는 엄마는 ‘나’를 담은 ‘그릇’과 같고 씨앗을 품어 싹을 틔우는 ‘흙’과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엄마는 뿌리이고 바탕이고 근본이다.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를 통해서 저자는 ‘엄마’와 아이의 애착 상태에 따라서 아이는 많은 영향을 받으며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엄마에 대한 이해가 함께 선행되어야 하고 이러한 상처가 해결되기 전에는 대물림이 되어 부부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자녀와의 사이에서도 나쁜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싫지만 싫어할 수 없는 분이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고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는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옭아매고 있는 큰 감정의 긴 터널을 만들어서 인생을 사는 내내 발목을 붙잡았다. 엄마에게 받았던 그 큰 상처를 내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엄마는 어렵게 꺼낸 엄마로부터 받은 그 큰 상처에 단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모르거나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오랜 세월을 끙끙 앓으면서 살았던 만큼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라는 책은 제목부터 관심이 갔다.

상처를 끌어안고 살지만 그 상처의 원인과 그 상처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몸이 병이 들면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지만 마음의 상처는 방치된채 마음의 상처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별아 작가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책에서 어쩌면 상처받은 내 마음의 상태를 이렇게 속시원하게 표현해놨을까 하는 대목을 읽었다. ”미국의 임상사회복지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샌디 호치키스의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에는 ‘거짓 성숙한 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어린애처럼 굴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나 분노, 모욕, 무력감을 표현하기는커녕 품어서도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성숙한 척하는 아이를 뜻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에 더 집착하고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쓴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까지나 아이이고 약자이기 때문에 어리광을 피우고 싶고 의존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억누른 채 점잖고 의젓한 ‘작은 어른’을 흉내 내는 동안 아이의 가슴에 검고 푸른 멍이 든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누군가와 공감할 수 없는 정서적으로 불능한 사람, 타인의 반응에 일희일비하고 좀처럼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처받기 쉬운 사람으로 자라난다”(김별아)고 말하고 있다. 김별아 작가의 글에서는 상처난 삶을 살아가는 마음의 모양을 봤다면 ‘나의 다정하고 무례함 엄마’에서는 상처의 원인을 발견하고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에서 어떻게 벗어나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모든 관계의 열쇠는 엄마라는 존재’(29p)에서 비롯되며, 자신을 지켜주는 엄마를 통해 형성된 관계는 앞으로 자녀가 인생을 살아가며 맺는 모든 관계 형성의 근간이 된다. 바로 ‘스키마’를 형성하는 것이다. 스키마는 ‘인간의 기억 속에 저장된 지식’을 뜻한다. ‘엄마’라는 존재를 다시 수면 위로 올리고 과거 기억을 재배열하는 과정은 무척 중요한 작업이다(29~30p)“라고 강조하고 있다. 엄마에게 받은 커다란 상처가 짐이 되어서 마음을 짓눌렀지만 다시 ‘엄마’라는 존재를 수면 위로 올려서 과거 기억을 재배열해야만 하는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이러한 작업의 필요성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저자는 “상담을 하면 할수록 심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내담자들의 핵심적인 갈등 요인 중 하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어린 시절부터 부정적인 기억이 깊은 상처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13p)라고 말했듯이 나에게 있는 엄마와의 기억은 상처투성이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상처에서 헤매고 벗어나지 못한 시간을 보냈다.
애착이론실험을 통해 세가지 애착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엄마와의 애착 유형은 첫째, 안정 애착 유형, 둘째는 불안정 회피적 애착 유형, 셋째는 불안정 양가적 저항 애착 유형으로 나뉜다(30~41p). 특히 나의 증상과 관련해서 살펴볼 형태는 양가적 저항 애착 유형이다. “양가적 저항 애착 유형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 부정적인 기억밖에 없고 상처받은 이야기, 서러워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모를 떠나지 않는다. 이것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어떨 때는 간혹이라도 부모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의식 어딘가에 따뜻하고 보드라운 엄마의 살결이 닿은 기억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이 내킬 때, 엄마의 상황이 될 때 사랑을 준 것이기 때문에 자녀의 마음은 결핍이 생긴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임상사회복지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샌디 호치키스의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에 나온 ‘거짓 성숙한 아이’의 모습으로 자란 나의 모습이다. 심리 상담이라서 그런지 이미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책에는 이미 나를 상담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느꼈던 증상들이 적혀 있다. 책에 나타난 나의 증상을 설명하는 몇 가지를 옮겨 본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쏟아내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자녀는 '엄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 사람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에만 집중하며 자신의 욕구는 모른척한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존 욕구가 자리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욕구가 지속적으로 좌절되면 건강한 심리를 유지할 수 없다.’ (90p)
‘불행을 많이 겪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요?" 물으면 불행을 피할 방법만을 생각한다. 무엇을 피해야 불행하지 않을까 하는, 회피 모드에 집중되어 있다.’(102)
‘보호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했고 엄마 대신 가족을 챙겨야 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일상의 모든 것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졌다. 항상 예민하게 곤두서 있어서 일상이 피곤했고 남들과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120p)
‘엄마가 죽도록 밉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럼에도 엄마를 놓지는 못한다. 엄마를 떠나지 않고 못 받았던 사랑을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다가 부모가 도움을 청하면 맥없이 휘둘린다(125). 양가적 저항 애착 유형이 그렇다. 어린 시절 방치된 채 자랐기 때문에 회피적 애착의 형태를 띠면서 양가적 저항 애착이 혼합된 불안정 애착 유형이 된 경우다.’(126p)
나는 나의 상처에 집중되어 있고 내가 느끼는 증상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엄마는 상처를 준 대상이기 때문에 엄마를 이해하기 보다는 한쪽에 세워놓고 스스로 그런 증상을 없애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많은 에너지를 쏟았지만 엄마에 대한 미움이나 내 삶에 나타나는 증상들은 변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태어나기 전부터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엄마와의 긴긴 인연은 아주 긴밀하고 치밀하고 복잡하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가 준 상처가 상처인지도 모를 시기에 받은 상처는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아주 깊고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것이 엄마로부터의 상처인지조차도 자각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도 많다. 엄마가 준 상처는 수면 위로 떠올리기가 어려웠고 방치하면서 무시 되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속에 알 수 없는 응어리를 끌어안고 되물림 되는 엄마로부터 받은 곪고 곪은 상처를 끄집어내고 바라보며 치유하는 과정을 대하면서 엄마가 준 상처로부터 따뜻하게 나를 일으키는 감정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엄마로부터 주어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를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결핍을 안긴 부모이지만 부모가 악해서 그런 것인지, 부모는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받았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고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할 수 있어야 합니다.”(168p)라고 방법을 자세히 말하고 있으나 아직 모두 다 말하지는 못했고 어설프게 엄마에게 그때 그 일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종종 용기를 내서 말하곤 한다. 이 말을 하기까지 참 많은 생각을 했고 엄마에 대한 많은 이해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위력은 대단하다. 훌륭한 사람 뒤에는 훌륭한 엄마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여러가지 편견을 가지고 엄마의 역할을 결정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들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신사임당처럼 현모이어야 할 것 같고 백범 김구 선생님의 어머니처럼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엄하지만 어질고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어머니를 기본적인 어머니상으로 전제하고 있으니 어쩌면 엄마는 원더우먼이어야 하고 아이에게 최대한의 긍정과 행복과 아름다운 마음을 만들어줄 수 있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런 밑그림을 그려놓고 ‘엄마’의 역할을 저울질하지는 않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갖춘 ‘엄마’의 모습으로 가상의 ‘좋은 엄마’를 만들고 이런 평준화된 기준과 틀을 만들어서 ‘엄마’를 기계와 같은 사람으로 입력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하는 반성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상처를 이해하고 늘 ‘가해자’라고 생각했던 엄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시각을 갖게 됐다.
참고문헌
김별아(2011), 이또한 지나가리라, 에코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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